이제 기업윤리를 훼손하고 조세정의를 무너뜨리는 편법이 합법이라는 외피를 쓰고 통용되는 구조 깨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경영자 보험은 기업이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 등 핵심 인력을 피보험자로 하여 가입하는 보험이다. 본래의 목적은 경영자의 유고 시 회사가 입게 될 손해를 보전하고, 기업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데 있다. 즉, 경영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중대한 질병에 걸려 경영에서 이탈할 경우, 그 손실을 보험금으로 메우는 것이다.
계약자는 법인이고, 피보험자는 경영자, 보험료는 회사 자금으로 납부된다. 그러나 실무 현장에서는 이 보험이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험의 수익자를 경영자 본인이나 가족으로 지정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이 구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기업 자금으로 보험료를 납입하고도 보험금이 법인이 아닌 개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회사 자금을 이용해 경영자 개인의 노후자금을 조성하는 구조로 활용되며, 종종 “법인 돈으로 절세하고, 보험금은 개인이 챙긴다”는 식으로 홍보되기까지 한다. 일부 보험설계사들은 경영자 보험을 고액 자산가 또는 중소·중견기업 대표에게 “합법적인 절세 수단”으로 포장해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보험료는 회사가 비용처리하여 법인세를 줄이고, 보험금은 개인이 비과세로 수령하게 되는 사적 자산 이전 경로로 악용될 수 있다.
회계 왜곡과 세제 불공정의 문제
경영자 보험이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될 경우,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회계의 왜곡이다. 보험료가 비용처리됨으로써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고, 그 결과 법인세 과세표준도 감소한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 비용일 뿐, 실질적으로는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자금 집행이다. 이런 보험은 장부상 자산 혹은 비용으로 처리되지만, 기업의 외형에는 반영되지 않는 사적 유출이 존재하게 된다.
외부에서는 이 보험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투자자나 금융기관, 세무당국은 회계 장부에 나타난 재무제표를 근거로 기업의 경영 상태를 판단하지만, 경영자 보험과 같이 수익자 구조가 개인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는 경우, 이는 기업 건전성에 대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세금 측면에서도 형평성이 무너진다. 법인은 손금처리를 통해 세금을 줄이고, 경영자는 보험금 수령 시 퇴직소득세나 배당소득세도 부담하지 않으니 사실상 무세 상태로 자산을 이전받는 것이다. 이는 같은 보험을 퇴직금이나 상여금으로 지급했을 경우와 비교해 훨씬 유리한 세제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처럼 자산 이전 수단이 제한된 계층과의 조세 형평성은 더욱 심각한 불균형을 낳는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 구조가 법망을 교묘히 피하면서 제도 안에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구현된다는 데 있다. 회사 자금을 개인 자산으로 이전하는 방식이 명백한 조세 회피 성격을 띠더라도, 현재의 약관과 회계 규정 내에서는 제재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과 정부의 역할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 설계와 감독 시스템의 허점에서 기인한다. 보험 상품은 출시 전 금융감독원의 약관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약관 심사는 계약 구조의 형식적 요건에 중점을 둘 뿐, 수익자 구조의 실질적 적절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즉, 계약자가 법인이고 보험료를 기업이 납입한다 하더라도, 수익자가 개인으로 설정된 계약도 심사 통과가 가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간 정보 연계 시스템이 미비하여, 기업 자금으로 납입된 보험료가 결국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보험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거나 과세 기준에 반영하는 체계가 없다. 결국, 공공기관의 분절적 행정 구조가 기업의 편법적 보험 활용을 사실상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구조적 허점을 메우기 위한 제도 전반의 개편이 시급하다. 첫째, 법인이 보험료를 납입하는 보험 상품의 경우 수익자 역시 법인으로 고정하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개인이 수익자인 경우에는 해당 보험료를 법인의 손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영자 상여나 배당으로 간주하여 과세하는 방식이 정착돼야 한다.
셋째, 일정 금액 이상의 고액 보험 계약에 대해서는 사전보고 및 공시의무를 부과하고, 금감원과 국세청이 공동으로 실질적인 구조 분석 및 사후 세무 검토를 실시할 수 있도록 정보 공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이미 체결된 경영자 보험에 대해서는 전수 조사를 통해 세제상 부당 이득 여부를 점검하고, 필요 시 소급 추징 등의 조치를 통해 제도의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경영자 보험은 그 자체로 문제시할 대상이 아니다. 핵심은 그 제도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허점을 제도 설계자와 정부 당국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왜 방치하고 있는가에 있다.
이제는 정부와 감독기관이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기업 윤리를 훼손하고 조세정의를 무너뜨리는 편법이 합법이라는 외피를 쓰고 통용되는 구조를 깨야 한다.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대다수 기업과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영자 보험을 둘러싼 구조적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