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다시 관세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2025년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그는 ‘상호주의 관세’를 공식 발표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기본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 60여 개 교역국에는 추가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무려 25%라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았다.
이는 단순한 무역 규제가 아니다. 자유무역 질서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한국 경제의 심장을 겨냥한 조치이자, 전면적인 경제 전략 재설계를 요구하는 ‘경제 안보 쇼크’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일방주의, 감정 아닌 전략으로
트럼프는 한국 자동차가 미국 내에서 충분히 생산되지 않고, 한국이 미국산 쌀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한국이 적국보다 미국을 더 나쁘게 대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통해 미국산 자동차 수입 기준을 완화했고, 현대차는 21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고용 창출과 지역 경제 기여도도 높다.
한국은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공정’이라는 명분 아래 자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적인 대응은 금물이다. 보복 관세나 외교적 충돌은 오히려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하고 치밀한 전략이다.
우선, 국제 여론전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자유무역 원칙을 지켜온 나라로써, 미국과의 무역 흑자 또한 공정한 경쟁의 결과임을 WTO, OECD, G20 등 국제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미국 내 정치권, 싱크탱크, 산업계, 언론과의 연대와 설득도 중요하다. 현대차,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남부와 중서부에서 창출해온 고용과 경제적 기여를 근거로, 각 주정부와 주요 노조 등과의 다층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대미 의존 탈피, 무역 다변화는 생존의 문제
이번 사태는 한국 경제가 미국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은 1,278억 달러, 무역 흑자는 557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외교적 변화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이제 무역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아세안, 인도, EU, 중남미 등 신흥 시장과의 전략적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인도네시아·멕시코와의 FTA 협상도 가속화해야 한다. 중동·아프리카와의 에너지·인프라 협력도 포괄적 무역 관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공급망 재편과 핵심 부품·소재의 국산화, 리스크 분산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AI, 바이오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술 자립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공급망의 ‘탈미국화’는 대응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통상외교의 전환, 워싱턴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무역 갈등은 곧 외교의 확장이다. 미국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보호무역을 정당화한다면, 한국도 통상외교의 지형을 재정비해야 한다.
‘워싱턴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각 주(州)정부, 정치인, 산업계, 노동계, 지역 언론까지 포괄하는 ‘입체적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이번 관세 발표 현장에 미국 최대 운수노조와 자동차노조(UAW) 관계자들이 함께한 사실은 관세 정책이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닌 정치적 메시지임을 보여준다.
한국도 이에 대응해 국내 산업계,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미주 한인 네트워크 등과 협력해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번 충격을 산업 구조 재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 관세 피해가 우려되는 수출 산업에 대해 긴급 금융 지원과 고용 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첨단 생산기술 개발, 핵심 인재 양성 등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산업 대전환의 기회, 경제주권 재설계로 응답
특히 미국이 ‘제조업의 귀환’을 내세우는 지금, 한국도 기술 혁신 기반의 제조업 고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정부는 세제 지원,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 등 전방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트럼프식 관세폭탄은 단순한 통상 마찰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경고하는 신호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 변수에 흔들리는 경제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 자유무역의 원칙을 지키되, 변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경제 전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 독립’을 외쳤다면, 이제 한국은 ‘경제주권 재설계’로 응답해야 할 때다.
이는 단순한 수출 다변화나 외교 전략 조정보다 더 깊은 과제다. 국가의 산업, 노동, 기술, 외교, 교육 정책이 총체적으로 재편되는 ‘경제 전면전’이며, 그 대응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금융소비자연구원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